태어날 때 4.4kg이었다. 우량아라고 하더라. 잘 먹고 잘 싸서 어렸을 때는 늘 통통했다. 축구는 잘 못했다. 잘하는 애들은 공격수, 그다음은 미드필더, 못하는 애들이 수비와 키퍼를 나눠 가졌는데, 덩치 있고 키 큰 나는 늘 센터백이었다.
중학교 1, 2학년 때 점심시간 반 대항전. 골키퍼가 공을 들고 찼는데 그게 나한테 날아왔다. 피하든 뭘 하든 했어야 하는데, 나는 팔을 십자로 몸에 딱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심판이 핸드볼을 선언하고 페널티킥을 줬다. 이기고 있던 게 동점이 되고, 승부차기에서 졌다. 어이가 없었다. 그날부터 축구를 접고 농구를 했다. 리바운드 따서 골밑슛 넣는 건 잘하더라. 고등학교에 가니 193, 195짜리 애들이 같은 반에 있어서 게임이 안 됐지만, 그래도 재밌게 했다.
몸무게는 들쭉날쭉이었다. 중학교 때 80쯤, 수능 볼 때 86. 대학에 가서는 돈이 없어 밥 대신 술만 먹다가 72가 됐다. 여드름도 엄청 많았다. 코로나 때 학교를 옮기면서 많이 먹어 군대 가기 전 96이 됐고, 훈련소 한 달 만에 86이 됐다.
입대했다. 이병, 일병 초반엔 사람 수를 채우려고 축구에 차출됐다. 병장들이 공을 뻥뻥 차면 이병들이 다 같이 뛰어가 주워 왔고, 생활관 선임들은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다 나보다 어린 애들이었는데, 웃기지만 그 칭찬이 받고 싶었다. 상병 말, 병장 때쯤 사람이 부족해서 나갔다. 볼 컨트롤도 못 하고 수비하면 다 뺏기니까, 그냥 맨 앞에서 공격수를 하겠다고 했다. 거기서 김준호의 인생이 시작됐다. 받으면 차고, 튕겨 나오면 또 찼다. 나도 내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니 아무도 못 막았다. 키퍼가 이병이라 먹혀 줬을지도 모르지만. 전역할 때 외모를 좀 가꿔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30분씩 달리고 운동해서 78kg까지 뺐다.
복학하니 스물넷, 멋쟁이 오빠가 돼서 농구부장을 맡았다. 한번은 박빙인 경기 막판에 다리를 삐끗했는데, 상대 패스를 역대급 점프로 낚아채 달려가서 골을 넣고, 절뚝절뚝 돌아왔다. 그날따라 관중이 많았다. 남자가 너무 많은 과라 응원도 남자만 오는데 그날은 여자 관중도 많았다. 쾌감이 장난 아니었다. 축구 대회에서도 스트라이커로 서서 골을 넣어 몇 번을 이겼다. 그때 우리 과에선 거의 히어로급이었다. 물론 나보다 잘하고 멋있는 친구도 많았다. 내가 제일 잘했다는 건 아니다.
3학년 이후로 운동을 놓았더니 살이 다시 쪘다. 취업해서 1년 차 직장인인 지금, 올해 추석에 주변에서 100kg 한번 찍어 보라고 해서 실컷 먹고 100kg을 찍어 인증샷을 남겼다. 지금은 95kg, 감량 중이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어떻게 뺄지 모르겠다.
«다른 집 이야기»에 올리려고 이름은 가명으로 바꾸고, 학교·동네 이름과 연도는 뺐습니다. 그림과 말풍선은 이야기하신 분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렸고, 장면 연출은 그림 연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