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내 인생을 먼저 만화 자서전으로 만들어 봤어요
withby · · 읽는 데 4분
부모님 이야기를 남겨 드리는 서비스를 만들면서, 정작 제 이야기는 한 번도 남겨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남의 부모님께 «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하기 전에 저부터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글은 개발자인 제가 도란과 통화하며 제 인생을 만화 자서전으로 만들어 본 기록이에요.
43분 동안 어릴 적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 통화는 어린 시절이었어요. 도란이 살던 집을 여쭤보길래 대답하다 보니, 동생이랑 티격태격하다 뒷베란다에 계신 어머니께 고자질하러 뛰어가던 장면이 튀어나왔어요. PC방에 갔다가 아버지한테 걸린 날, 중학교 반 대항전에서 공이 날아오고 페널티킥까지 이어진 날도 줄줄이 나왔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43분이 지나 있었어요.
놀라웠던 건 제가 잊고 있던 장면이 많았다는 거예요. 누가 묻지 않으면 꺼낼 일이 없던 이야기들이에요. 질문 하나가 기억의 문고리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어요.
통화하는 동안 도란은 제 말을 끊지 않았어요. 제가 한참 이야기하다 «아 그리고» 하고 다른 데로 새도 그냥 따라와 줬어요. 대답이 짧아지면 «그때 동생은 몇 살이었어요?» 처럼 작은 질문 하나로 다시 장면 안으로 데려갔어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오히려 덜 쑥스러웠던 것 같아요.
말한 장면이 만화가 되어 돌아왔어요
통화가 끝나고 받아쓴 글이 장면별로 나뉘었어요. 제가 하지 않은 말은 들어가 있지 않았고, 제 말투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그 장면이 그림 이야기(웹툰)로 그려져 돌아왔을 때는 조금 울컥했어요. 어머니가 서 계시던 뒷베란다, 아버지의 굳은 얼굴이 제 기억과 꽤 닮아 있었거든요.
물론 처음부터 제 기억과 꼭 같지는 않았어요. 다니던 학교나 살던 동네처럼 그림이 실제와 달라지기 쉬운 곳은 지도와 사진을 건네 참고하게 했어요. 그림을 보며 «여긴 이랬는데» 하고 바로잡는 시간도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시간이었어요.
글을 읽으면서 하나 더 느낀 게 있어요. 제가 말한 그대로라서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곳도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좋았어요. 읽다 보면 제 목소리가 들렸거든요. 부모님 자서전도 이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 쓴 남의 문장보다 서툴러도 그분의 말이 남는 책이요.
두 번째 통화에서는 더 깊이 들어갔어요
첫 통화로 만든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빈 곳이 보였어요. 그 빈 곳을 질문으로 적어 두고 두 번째로 이야기했어요. 학교와 군대, 진로를 고민하던 때, 가족과 친구들 이야기까지 나눴어요. 처음보다 훨씬 편하게 말이 나왔어요. 한 번 해 본 대화라 마음이 놓였던 것 같아요.
제목은 아직 고민 중이에요
이야기가 모이자 꽤 두툼한 만화 자서전이 됐어요. 제목은 «제목은 뭘로 짓지?» 로 붙여 두었어요. 정말로 아직 고민 중이라서요. 10년 뒤의 제가 이 책을 펼쳤을 때 조금 웃고, 조금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제 이야기로 먼저 해 보고 나니, 부모님 이야기를 남기는 일이 왜 필요한지 더 분명해졌어요. 누가 물어봐 주기만 하면 이야기는 나와요. withby(곁에)는 그 질문을 대신 드리는 서비스예요. 도란이 전화로 여쭙고, 들려주신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남겨 드려요. 여기서 말한 뒷베란다와 반 대항전 장면은 «다른 집 이야기»에 만화로 올려 두었어요.